일자리인권분과/5차시/르포기사/'나 여기 있어요'

2014. 6. 2. 00:572014 - 2017 box/대학

[5차시/일자리·인권분과/르포기사] ‘나 여기 있어요’

 

나를 부르는 수많은 이름들이 있어요.

여기, 저기, 거기에 수많은 이름의 ‘나’들이 있겠지만

있어요 나는 여기에. 나에겐 거기가 당신에게 여기이듯이.

 

작성자 : 김경희(kkotkyunghee@hanmail.net), 민주원(belle6400@naver.com)

작성일 : 2014-06-01

 

 지난 25일 일요일은 ‘나 여기 있어요.’라는 주제로 22일부터 4일 동안 진행되었던 19회 서울인권영화제의 마지막 날이었다. 민주화의 상징 마로니에공원에 선선한 바람이 불었고 자리는 드문드문 채워졌다. 의자에는 ‘우리는 모두 VIP’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사회자가 나와서 모든 자리가 VIP인 이유는 모든 사람이 존엄한 존재이고 차별이 없어야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모든 의자에 ‘사람은 누구나 VIP입니다.’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11:00 질문 The Questioning · 대한문을 지켜라 Save the Daehanmun

사회자가 처음으로 상영된 영화의 주제에 대해 소개했다. 첫 상영작 <질문>과 이어서 상영된 <대한문을 지켜라>의 주제는 ‘불통의이유’였다. 답은 정해져있으니 너는 대답 만 해라 하는 식의 소통 때문에 인권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난다. 

<질문>은 홍콩에서 독립 후보자들을 응원하러 장시성 신유로 간 사람들을 경찰이 뒤를 밟고 호텔을 수색을 한 상황을 담은 짧은 영상이다. 과연 우리에게 ‘거부할 권리’는 ‘권리’로서 작용하고 있는가를 질문하는 영화이다.

 이어서 상영된 <대한문을 지켜라>는 2012년 4월 대한문 앞에 쌍용차 정리해고 이후 노동자들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설치된 분향소 천막을 1년 뒤 철거하던 상황을 보여준다. 대한문 앞에서 집회할 권리가 제한 당하는 동시에 인권도 사라졌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철거당시 남대문 경찰서 경비과장 최성영이 승진하는 것 등을 보여주며 ‘최성영’이 대한문에만 있지 않으며 사회 곳곳에 있는 ‘최성영’은 무사유의 문제라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에서 최성영이 법조항을 들이밀며 ‘고착해!’를 외치고 집회 장소를 화단으로 만드는 등 온갖 방법으로 집회 및 시위할 권리를 차단하는 모습이 나왔다. 그때마다 관객들은 웃음 섞인 한숨을 쉬었다.

 

▲인권단체연석회의 공권력감시대응팀 랑희활동가가 한국에서도 불심검문을 거부하는 것이 떳떳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두 영화가 끝나고 관객과의 대화 시간이 이어졌다. 인권단체연석회의 공권력감시대응팀 랑희활동가는 인상이 험악하다는 이유로, 집회장소 근처에 있었다는 것 때문에 신분을 확인해야하는 것도 불합리하지만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행사하면 오히려 의심받는 현실인데 이는 권리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다.

 영상팀 하샛별씨는 실제 집회 제한은 <대한문을 지켜라>에 나온 영상보다 더 심하게 한다. 그러나 처음 보는 사람들이 집회에 대한 이미지를 오해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여 비교적 덜 심한 영상으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헌법에 보장된 집회·결사의 자유가 현재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지 알았으면 좋겠고 이를 되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12:00 슬기로운 해법 Sage Solution

 두 번째 주제는 표현의 자유였다. <슬기로운 해법>은 언론이 제 4의 권력으로 작용하면서 한국 사회의 여러 모습을 객관적으로 보도하고 권력을 감시하는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언론기업의 안위를 위해 집값 상승을 공모하기도 하고, 기업은 언론에게 상을 주고 기업의 입맛에 맞는 기사를 쓰게 하며, 언론은 정권을 이용해 미디어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고 정권은 언론을 통해 정치적인 숙적을 제거할만한 위력이 있는 오보를 내보내는 등 펜의 힘을 남용하고 있음을 정리하였다.

 영화 상영 후 언론협동조합 프레시안 전홍기혜 편집국장은 관객과의 대화에서 ‘펜은 총보다 강하다’는 민주주의를 위해 생긴 말인데 이 말의 의미가 변질되었고, SNS와 같은 기술의 진보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하는데, 이는 양치기소년과 같은 거대 기업 언론들에게도 돌파구가 될 것이고 마을사람들은 계속 속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비췄다. 

 

제 19회 서울인권영화제에 참여한 신동은(24)씨. “요즘엔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언론사와 언론인이 살아남으니 세상은 요지경이에요.”

 <슬기로운 해법> 상영 후 기자 옆자리에 앉은 신동은(24)씨는 언론이 스스로 제4 권력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직시하고 있는 것 같다. 자기보다 높아보이는 권력에는 낮아지고, 낮아보이는 존재에게는 무자비하다. 그렇게 해서 살아남으려는 것 같이 보이는데, 제 역할을 하지 못할거라면 살아남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언론의 행태가 표현의 자유라는 중요한 가치에 대한 격을 떨어트리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며 언론이 제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을 비판했다.

 

▲ 하늘이 흐려지더니 기어이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다. 사람들은 무대 쪽에 설치되어있는 지붕 밑으로 자리를 잡고 모여 앉았다. 그렇게 다시 상영은 계속 되었다.

 

14:00 위 약관에 동의합니다 Terms and Conditions May Apply

 영화는 정부와 회사가 매일 국민들의 정보를 합법적으로 획득하고 있음을 실제 사례를 들어 보여준다. 또한, 기업의 데이터 수집 행위가 얼마나 은밀하고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운영되는지 여실히 나타냈다. 이를 통해 국가가 개인정보 데이터처리를 통해 감시·통제하고 빅데이터화하여 개인을 통제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또한, 구글과 페이스북으로 대표되는 검색과 SNS서비스를 제공하는 여러 기업들이 약관을 기반으로 무차별적으로 개인의 정보를 수집하고 있으며, 약관에 따라 제3자(작성자가 아닌 타인, 기업 또는 정부)의 요청에 언제든지 제공하겠다는 것을 당당히 선언하고 있는 현 상황의 문제점을 밝혔다. 매사에 인식하지 못하거나 혹은 그 절차에 강제성을 띄고 있는, 읽기 힘든 긴 약관에 동의했다는 이유로 합법적으로 개인정보를 수집하거나 통제·감시하는 경우를 목도할 수 있다.

 이렇게 침해받는 것을 인식하지도 못하고 있는 정보인권에 대해 정여경 활동가는 “사생활이나 개인정보의 문제는 인권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특히 디지털 시대에는 프라이버시권이 가장 잘 보호되어야 하지만 우리가 모르는 사이 침해당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기업에서 직원들이 컴퓨터를 사용하는 동안의 모든 데이터를 감시하는 것 또한, 명백한 정보인권 침해이다. 그러나 삼성과 같은 큰 회사들은 대부분 모든 사원들에게 동의서를 받기 때문에 법적인 문제를 피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2007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권고했던 노동 감시를 규제하는 법률을 제정해야한다.”고 말했다.

 

 

▲정보인권단체 정여경인권활동가가 관객과의 대화에서 이야기 하고 있다.

 

16:00 밀양, 반가운 손님 Miryang, a Welcome

 여섯 가지 옴니버스 형식으로 이뤄진 <밀양, 반가운 손님>은 초고압 송전탑을 둘러싼 다양한 쟁점들을 구조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첫 장면은 밀양을 바라보는 여러 가지 시선들을 극형식 나타내며 시작되었다. 일상 속에서 밀양에 관한 대화가 오가지만 정작 누구도 진짜 밀양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밀양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밀양시 상동면 도곡리, 117번 송전탑은 공사를 시작했고, 산외면 회곡리 골안마을에서는 106번, 107번, 108번 송전탑의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매일 3시, 공사장 길목, 15분 간, 공사를 지연시키기 위해 네 명의 할매들은 경찰, 한전과 싸운다. 그렇게 10년이 흘렀고, 이제는 투쟁이 일상의 한 부분이 되었다. 그들의 일상은 침해받고 있고, 한전 측의 계속되는 거짓정보로 마을 공동체는 이미 갈라졌다. 국가는 국책사업과 사업승인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마을사람들에게 물질적 수혜를 대가로 그 땅을 비워줄 것을 강제한다. 그러나 일평생 가꾸고 더불어 살아왔던 그곳에 환경과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는 원전을 세우는 것을 그냥 내버려둘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마을 사람들의 기나긴 투쟁 과정 속에서 우리가 왜 송전탑으로부터 밀양을 지켜야 하는지, 왜 이 외로운 싸움을 멈출 수 없는지 말해주고 있다. 나아가 원전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원전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볼 것을 영화는 말하고 있다.

 이현숙 활동가(밀양 전국대책위원회)는 “밀양의 문제가 언론에서 제대로 다뤄지지 않고 있고, 아직까지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영화라는 수단자체가 사람들에게 편안히, 무겁지 않게 다가갈 수 있어 이를 통해 많이 알려져서 밀양의 문제가 우리의 문제로 공론화되는 것이 목표이다. 또한, 밀양의 송전탑에 대해 찬성, 반대로 나뉘는 흑백논리를 넘어서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공론화되기 위해서는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막 영화를 남겨두고 신나는 섬의 공연으로 폐막식이 진행되었다. 신나는 음악이 흐르는 사이 비는 더 거세지고 차가운 바람소리와 함께 마지막 영화가 시작되었다.

 

19:00 탐욕의 제국 The Empire of Shame

 <탐욕의 제국>은 삼성 반도체 공장의 피해자들이 삼성에 대항하여 투쟁하는 이야기를 다뤘다. 과거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한 경력이 있던 노동자들 중 대다수의 노동자가 백혈병‧뇌종양‧유방암 등 각종 중증질환에 걸렸고 그중 73명은 사망했다.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은 이 문제가 제기된 후 7년 동안 피해자에게 단 한 번의 사과도 하지 않고 모두 개인의 질병일 뿐이라 말했던 삼성과 싸웠다.

 그러나 그들이 싸우는 대상은 무력감을 안겨줄 정도로 거대한 대기업인 삼성이다. 비오는 날에도 가족들은 시위를 하러 나서지만 언제나 그들은 외면받고, 범죄자 취급을 당한다. 심지어 묵묵부답으로 일관한다. 영화의 한 장면에서 피해자와 가족들의 외침을 음소거한 상태로 카메라를 삼성의 높은 빌딩을 보여준다. 유족들과 피해자들이 외치는 목소리는 하늘로 한없이 솟은 거대 권력을 상징하는 빌딩과 너무나도 대조된다. 강경한 그들의 목소리는 빌딩에 비해 너무나 작고 약하다. 노동자들을 대변하고 노동자들을 위해 일해야 마땅한 근로복지공단도 그들을 외면하고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삼성 반도체 공장 피해자들의 이러한 소외와 비극을 가중시키는 것은 비단 삼성뿐 만이 아니다. 그들을 바라보는 길을 가다 잠시 멈춰선 평범한 사람들의 시선도 결코 곱지 않다. 삼성 반도체 공장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음소거시키는 것은, 거대권력인 삼성뿐 만이 아니라 같은 노동자로 살아가는 국민 대부분일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자신도 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자본가의 입장을 대변하며 노조를 규탄하는 기형적인 세상에서 살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 볼 문제이다.

 

 이번 19회 서울인권영화제는 총 26편의 영화를 야외인 마로니에공원과 다목적홀 지하 두 군데에서 나누어 상영되었고 모든 영화에서 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통해 인권활동가 혹은 감독들이 나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영화제 기간 동안 19개 인권단체가 부스운영을 하며 여러 인권 문제에 대해 알리는 시간을 가졌다. 나흘 동안 인권에 관심이 있는 2900명의 사람들이 영화제에 다녀갔다.

 이 순간에도 곳곳에서 인간 존엄을 위해 거대 권력과 외로운 투쟁하고 있지만 지금처럼 비가와도 지켜보고 연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빗속에도 끝까지 남은 관객들이 자원봉사자들과 활동가들을 도와 뒷정리를 했다. 작품 속 ‘거기’에 있는 ‘나’들과 작품을 바라보는 ‘여기’에 있는 '나‘들을 구분하기 힘든 지점들을 통해 놓치고 있는 부분들을 채워갈 수 있길 바란다는 영화제의 바람이 조금 이뤄지는 듯 했다.